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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연구센터

이상현 1공수여단장 프로필|준장|나이|고향|육사|증언|재판|출생

by 정보주민센터 2025.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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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1공수여단장 프로필|준장|나이|고향|육사|증언|재판|출생


이상현은 대한민국 육군의 준장으로, 제1공수특전여단장을 역임했습니다.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으로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50기로 임관했습니다. 군 내에서는 전략 및 정책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한 장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4년 윤석열 정부 시기의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 출동 명령을 받은 사실과 그에 대한 대응으로 대중적 주목을 받았습니다. 실탄 지급 명령을 거부하고 병력의 물리적 충돌을 막은 일화로 군 내외에서 양심적 지휘관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관련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 및 보직 해임되었으며, 책임 있는 태도와 실명 증언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 이름

이상현

 

◎ 생년월일

1971년생

◎ 나이

52세

 

◎ 고향

충청북도 청주시

◎ 학력

청주 청주고등학교 (졸업)

육군사관학교 (50기 / 졸업)

 

◎ 경력

제15보병사단 제39보병연대 1대대장

합동참모본부 해외파병과 작전-파병계획담당

제6보병사단 제7보병연대장

제6보병사단 참모장

제1공수특전여단장

◎ 육군사관학교 기수

50기

 

◎ 복무 기간

1994년 ~ 현재

◎ 현재 계급

육군 준장

 

◎ 준장 진급일

2022년 12월

◎ 육군 특수전 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장 임기

2023년 12월 ~ 2025년 3월 4일

 

◎ 종교

미상

출처 머니투데이

◎ 가족 관계

미상

 

◎ 생애

이상현은 대한민국 육군의 준장으로, 제1공수특전여단장을 역임했습니다.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태어나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육군사관학교 제50기로 입학해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그는 주로 전략 및 정책 관련 분야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령 시절 맡았던 보직들을 통해 그 직능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2024년 12월, 윤석열 정부 시기 발생한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실명으로 공개 증언을 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는 계엄령 하달 직후 국회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출동 목적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이, 단지 “국회로 가라”는 지시만 전달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해당 명령이 군사작전인지 테러 대응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습니다.

 

 


상황의 불명확함과 작전의 비정상성을 직감한 그는 병력에게 실탄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공포탄조차 배급하지 않았으며, 민간인과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시했습니다. 또한 병사들에게는 총기를 모두 어깨에서 내려 뒤로 멜 것을 명령했습니다. 다만, 예기치 못한 사태를 대비해 자신의 차량에만 500여 발의 실탄을 실었다고 밝혔습니다. 현장 도착 후에도 병력 대부분을 차량에 대기시킨 채 복귀 조치했으며, 추가 병력 투입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현은 당시 상황이 정상적인 군사 작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 부대가 12.12 군사반란의 오명을 씻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데, 다시는 그런 불명예를 반복할 수 없다”고 말하며 당시 결단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병사들의 안전과 헌법적 충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2024년 12월 말, 그는 언론과의 실명 인터뷰를 통해 해당 사건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회로 출동한 병사들과 장교들의 행위에 대한 지휘책임은 지휘관인 자신에게 있다는 이유로 언론에 직접 나섰습니다. 이후 2025년 1월 7일, 이상현이 2024년 12월 4일 밤 0시 28분경 장 모 대대장에게 민주당사 출동을 지시했던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같은 해 1월 13일에는 그가 계엄 선포 약 5개월 전인 2024년 7월 3일, 국회를 비롯한 주요 국가기관에 내부 설계도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해당 공문은 국회, 검찰, 국정원,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 총 20개 기관에 발송되었으며, 모두 이상현 여단장의 명의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요청은 전 기관에서 거부되었고, 실제로 도면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당시 요청이 계엄 계획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김현태 비상계엄 계획단장의 증인 심문 과정에서, 이상현 여단장이 과거 간부 시절 군사 쿠데타 관련 연구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작전 상황 중 군사적 충돌보다는 정치적 사안일 수 있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당시 그가 병력 행동을 제한하고 민간인과의 충돌을 피하게 했던 결정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2025년 2월 21일, 그는 국회에 다시 출석해 계엄 해제 직후 부대원들이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처벌받지 않도록 상황일지를 절대 수정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자신도 수첩에 그날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수사기관이 확보한 녹취록에도 관련 지시가 포함되어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2025년 2월 28일, 그는 내란 중요 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이어 3월 4일, 이상현은 여단장 직무에서 정지되었으며, 이는 그가 실명 인터뷰에서 언급한 책임 발언이 실제로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대로, 직무 정지 조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같은 사건에 연루된 다른 고위 장교들과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비판받은 것과는 달리, 이상현은 병사들을 보호하고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결국 2025년 3월 18일, 국방부는 그를 공식적으로 보직 해임했습니다.

 

 


이상현 준장은 계엄 작전의 한복판에 있었던 지휘관이었지만, 상황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병사들의 안전과 국민의 권리를 우선시했습니다. 그는 군 지휘관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드러내며, 헌법과 양심에 따른 결단을 내렸습니다. 당시 병사들에게 실탄을 지급하지 않은 그의 선택은 단순한 명령 불복종이 아닌, 헌법적 가치와 공공의 안정을 우선시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는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자신의 결정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통해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결국 지휘관직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남긴 행동은 헌법에 충성하는 군인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앞날에 국민적 관심이 쏟아 지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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