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민 의원 프로필|소속정당 지역구|나이 고향 학력 이력|재산|가족

한창민은 시민사회 활동과 정당 정치를 오랫동안 경험하며 제22대 국회의원에 이른 대한민국의 정치인입니다.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한 그는 학창 시절부터 사회문제와 교육,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정치적 시각을 키워왔습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사회 활동을 거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치 활동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의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에서는 대전시당 위원장과 대변인, 부대표 등을 지내며 정치적 경험을 쌓았고, 이후 새로운진보를 거쳐 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했습니다.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한 그는 현재 사회민주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맡아 당과 원내 활동을 함께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하고 탄핵소추안 공동발의에도 이름을 올리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시작해 진보정당과 새로운 정치세력을 거쳐 국회의원과 정당 대표에 이르기까지 한창민이 걸어온 정치적 여정을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 이름
한창민 (韓昌旼)
❖ 생년월일
1973년 7월 22일
❖ 나이
53세 (2026년 기준)


❖ 고향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 현 거주지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
❖ 본관
청주 한씨
❖ 학력
백화초등학교 (졸업)
안천중학교 (졸업)
대전대성고등학교 (졸업)
대전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 92학번 / 학사)
공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일반사회교육 / 석사)
아일랜드 골웨이 국립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


❖ 주요 경력 / 이력
노사모 국민경선대책위원회 위원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 운영팀장
정의당 대변인
정의당 부대표
사회민주당 공동대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경영기획본부장
제22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10번 / 더불어민주연합 / 초선)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사회민주당 대표
사회민주당 원내대표
❖ 병역 / 군대
육군 병장 만기 전역
❖ 가족 관계 / 집안
부모님
아버지
어머니
배우자 / 부인
기혼 (결혼 했음)
자녀
공개되지 않음


❖ 신체
키
175cm
❖ 종교
개신교 (기독교)
❖ 재산
2024년 4900여만원 신고
❖ 전과 기록 유무 (건수)
0건


❖ 현 국회의원 지역구
비례대표 국회의원 (지역구 없음)
❖ 현 국회의원 임기
2024년 5월 30일 ~ 2028년 5월 29일
❖ 현 국회 상임위원회
개신교
❖ 선거 이력 / 입후보 경력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정의당 / 낙선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 정의당 / 낙선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 더불어민주연합 / 당선 / 초선


❖ 당적 / 소속 정당
사회민주당
❖ 사회민주당 국회의원 한창민 소개
사회민주당 국회의원 한창민은 오랜 시민사회 활동과 정치 참여를 거쳐 제22대 국회에 입성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입니다. 사회민주당의 초대 대표를 맡고 있으며 당내 유일한 국회의원으로서 원내 활동과 당 운영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와 언론개혁 운동에서 출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치 활동을 경험했고, 이후 진보정당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영역을 꾸준히 넓혀왔습니다. 정의당에서 대변인과 부대표 등을 지낸 뒤 새로운진보를 거쳐 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이후 정무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사회민주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겸임하며 당의 방향을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시기 여러 정치적 현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왔으며, 2024년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창민 의원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정치에 뛰어들었으며, 시민사회 활동과 정당 정치, 국회의원으로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한창민은 1973년 7월 22일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한갑기 씨와 어머니 죽산 안씨 안무임 씨 사이에서 5형제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한 뒤 안천농협조합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창민은 전북 진안의 지역적 배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진안 백화초등학교와 안천중학교를 다녔고 이후 대전으로 이주해 대전대성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사회문제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학창 시절 만난 스승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으로 해직된 은사를 접하면서 사회적 문제와 교육 문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훗날 시민사회 활동과 정치 참여로 이어지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대전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시절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컸고 여러 사회적 이슈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학생운동이나 총학생회 활동에 깊숙하게 참여하기보다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정치와 사회 문제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1994년 2월 1일 육군에 입대해 제3보병사단에서 소총수로 복무했으며 1996년 4월 4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이후에는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더욱 구체적인 실천으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한창민의 정치적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론운동과 시민사회 활동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군 복무 이후 그는 언론과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언론이 사회의 여론 형성과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티조선 우리모두 활동과 강준만 교수와 함께한 인사모 활동 등에 참여했으며, 언론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을 실제 시민운동으로 이어갔습니다. 그가 안티조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배경에는 언론의 수준이 민주주의의 수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단순히 특정 언론사를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언론과 권력, 자본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민사회 활동은 자연스럽게 정치권과의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한창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2001년 노사모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노무현 후보의 국민경선 대책위원을 맡았고, 경선 과정에서 선거인단을 조직하는 등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노무현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된 뒤에는 대선 승리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서 후보 단일화 등을 둘러싼 여러 상황이 발생했으며, 한창민은 유시민 등과 함께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하면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에 앞장섰습니다. 대선캠프에서는 대전국민참여운동본부 홍보국장을 맡아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이끌었다고 전해집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오히려 정치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선택을 했습니다. 노사모 출신들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직접적인 정치 활동보다는 시민사회와 교육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대학원으로 돌아가 교육학을 공부하는 한편 조아세 대전 대표와 언론개혁 시민단체 활동 등에 참여했습니다.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힘 대전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시민사회 영역에서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고민했으며, 열린우리당 내 혁신그룹인 참여정치실천연대의 이사로 대전 지역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학문적인 공부도 계속 이어갔습니다. 2005년 2월 공주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해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아일랜드 골웨이 국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거버넌스를 공부했습니다. 2014년 8월에는 거버넌스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치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문제를 학문적으로도 고민하며 교육과 정치, 시민사회와 거버넌스에 대한 시각을 넓혀갔다는 점에서 그의 경력은 단순한 정당 정치인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보여줍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과도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에서 운영팀장으로 일했으며, 봉하에서 대전으로 돌아온 뒤에는 재단 대전세종충남 지역위원회의 상임운영위원을 거쳐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이후 2021년부터는 노무현재단 경영기획본부장을 맡아 서울 노무현시민센터와 봉하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전시관 등 기념사업과 관련된 업무에도 힘을 기울였다고 전해집니다. 시민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면서 시민의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계속 이어간 셈입니다.


정당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진보정당과의 인연을 통해서였습니다. 2012년 진보정의당 대전광역시당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진보정당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14년에는 정의당 대전광역시당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같은 해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직접 선거에 도전했습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권선택 후보에 밀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지역 정치 현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진보정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2015년에는 정의당 대변인으로 임명되어 약 2년 동안 당의 입장을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대변인은 정당의 주요 정책과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는 자리인 만큼 정치적 현안에 대한 빠른 판단과 메시지 전달 능력이 중요합니다. 한창민은 이 기간 동안 각종 사회적 현안과 정치적 이슈에 대해 정의당의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이후 2017년 7월에는 정의당 부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당 지도부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정의당 부대표 선거에서는 낙선하면서 당내 정치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됩니다.
이후 한창민은 정의당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2022년 9월 30일 참여계 인사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진보의 집단 탈당에 함께하며 정의당을 탈당했습니다. 이후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이어갔고, 2023년 10월 1일 새로운진보를 중심으로 사회민주당 창당을 선언했습니다. 정호진 전 정의당 대변인과 함께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되면서 새로운 정당의 출범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총선 과정에서 새진보연합과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게 되면서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한창민은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습니다. 새진보연합이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면서 비례대표 후보 추천과 관련된 자리를 배정받았고, 사회민주당에서는 한창민과 정호진 공동대표, 임명희 강원특별자치도당위원장 등이 후보 추천을 위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한창민이 경선에서 승리해 새진보연합 몫의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되었습니다. 이후 더불어민주연합에서 비례대표 순번 10번을 받으면서 제22대 총선에 출마하게 됩니다.
선거 과정에서는 더불어민주연합의 지지율과 비례대표 의석 전망을 둘러싸고 여러 분석이 나왔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당선권에 들어가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 한창민은 국회의원으로서 정치권에 다시 한 번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시민사회 운동과 지역 정치, 진보정당 활동을 거쳐 마침내 국회에 입성한 것입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 및 정당의 향후 진로를 둘러싼 문제로 제명되는 과정을 거쳤으며, 새진보연합을 거쳐 다시 사회민주당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국회에 입성한 이후에는 정무위원회에 배정되어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금융과 경제, 공정거래, 소비자 보호 등 정무위원회와 관련된 여러 현안을 다루면서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창민은 사회민주당 내 유일한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당대표뿐만 아니라 원내대표 역할까지 함께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소수정당의 국회의원으로서 당의 목소리를 국회 안에서 전달하는 동시에 정당의 조직과 방향을 함께 이끌어야 하는 책임까지 맡게 된 것입니다.
2024년 6월 27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된 제1차 대표단·전국위원 선거에서는 당대표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당시 83.6%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사회민주당의 초대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로써 한창민은 사회민주당의 창당 과정에 참여한 인물을 넘어 당을 공식적으로 이끄는 대표가 되었습니다. 당내 유일한 국회의원이자 당대표, 원내대표라는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된 만큼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큰 책임을 맡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창민 의원의 정치 행보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건은 2024년 11월에 있었던 노동자대회 현장입니다. 민주노총이 주최한 11.9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과정에서 경찰과 민주노총 조합원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고, 한창민은 이를 중재하려고 현장에 나섰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임을 밝혔음에도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고 옷이 찢어지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후 병원을 찾은 결과 갈비뼈 골절과 손가락 인대 손상 등의 진단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국회의원이 집회 현장에서 충돌에 휘말린 사건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2024년 12월에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국회가 긴급하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국회의원들의 국회 진입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창민은 출입 제지를 우회해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으로 들어갔고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했습니다. 이어 12월 4일에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등과 함께 야6당이 공동발의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한창민이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겼던 사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창민의 정치 인생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민사회 활동에서 시작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치 참여를 경험하고, 이후 진보정당에서 지역위원장과 대변인, 부대표를 거쳐 새로운 정당의 창당과 국회 입성까지 이어지는 상당히 긴 여정을 걸어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언론운동과 교육운동, 시민사회 활동을 거치면서 형성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후 정당 정치에서도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노무현재단에서 활동하면서 시민의 참여와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고, 정의당에서 활동하면서 진보정치의 현실과 과제를 경험했습니다. 이후 새로운진보와 사회민주당 창당으로 이어진 과정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적 방향을 새로운 정당을 통해 구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한창민은 사회민주당 대표이자 원내대표로 활동하면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거대 정당 중심의 국회에서 소수정당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달하고 존재감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그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의 규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동시에 맡고 있기 때문에 정책과 조직, 원내 활동을 모두 직접 챙겨야 하는 부담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오랜 시민사회 경험과 정치 활동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창민이라는 정치인을 살펴볼 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한 번의 선거 결과나 특정한 직책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긴 정치적 여정입니다. 1973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서 행정학을 공부한 뒤 시민사회와 언론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치 활동을 경험했고, 이후 교육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학문적인 연구도 이어갔습니다. 진보정당에 참여한 이후에는 대전시장 선거에 직접 출마했고, 정의당 대변인과 부대표를 거쳐 새로운 정치세력의 창당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22대 국회의원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창민 의원에게는 사회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을 얼마나 넓히고 국회에서 어떤 정책적 성과를 만들어낼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소수정당의 대표이자 원내대표라는 위치에서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분명하게 보여주면서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과 의정활동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온 경험이 국회라는 제도권 정치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행보만 놓고 보더라도 한창민은 정치와 시민사회의 여러 현장을 오랫동안 경험해온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론운동에서 시작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정치 경험, 노무현재단에서의 활동, 정의당에서의 정당 정치, 새로운진보와 사회민주당 창당, 그리고 제22대 국회의원 당선까지 이어진 과정은 그의 정치적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흐름입니다. 현재는 사회민주당 대표와 원내대표로서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어떤 정책과 메시지로 국민들에게 다가갈지, 그리고 소수정당의 한계를 넘어 어떤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낼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의 삶을 위한 정치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 그리고 자신이 오랜 시간 강조해온 민주주의와 참여의 가치를 국회에서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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