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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연구센터

그린란드 지도|위치|인구|면적|자원|크기|덴마크|미국 트럼프|

by 정보주민센터 2026.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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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지도|위치|인구|면적|자원|크기|덴마크|미국 트럼프|


그린란드는 단순한 북극의 섬을 넘어, 오랜 역사와 복잡한 국제 질서 속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해 온 공간입니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며 문화를 이어왔습니다. 대륙과 대륙 사이에 놓인 지리적 위치는 그린란드를 늘 외부 세계의 관심 속에 놓이게 했습니다. 이 땅은 원주민의 생활 터전이자 제국의 확장과 냉전의 무대가 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에는 자원과 안보, 기후 변화라는 시대적 과제가 교차하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선택이 겹쳐지며 그린란드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린란드의 이야기는 하나의 섬을 넘어 세계사의 흐름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최근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그린란드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 그린란드 자치령

1979년 5월 1일 그린란드 자치령 수립


❖ 그린란드 자치정부

2009년 6월 21일 자치정부 권한 확대


❖ 그린란드 주권 국가

덴마크


❖ 그린란드 수도

누크


❖ 그린란드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 그린란드 국왕

프레데리크 10세


❖ 그린란드 총리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 그린란드 면적

2,166,086 km² / 대한민국 면적 - 100,363 km²


❖ 그린란드 인구

56,831명 (2025년 기준)


❖ 그린란드 국교

덴마크 교회 (루터교)


❖ 그린란드 공용 언어

그린란드어


❖ 그린란드 통용 화폐

덴마크 크로네


❖ 그린란드 GDP

1인당 58,499 달러


❖ 그린란드 소개

그린란드는 북극해에 위치한 거대한 섬으로, 덴마크 왕국에 속한 자치 지역이며 동시에 이 섬을 통치하는 자치정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현지 언어로는 칼라흘리트 누나트라고 불리며,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누크입니다. 인문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속하지만, 정치·역사적 맥락에서는 북유럽을 포함한 유럽 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독특한 위치를 지닌 지역입니다. 이러한 이중적 성격은 그린란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그린란드의 주민 구성은 약 90%가 그린란드계 이누이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누이트를 포함한 북극권 원주민 문화가 사회 전반의 중심을 이룹니다.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식민지 개척 이후 현재까지 그린란드의 주권은 덴마크에 속해 있으나, 오늘날 그린란드는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자치정부는 자체적인 입법과 행정 권한을 행사하며, 법적으로는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택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린란드는 완전한 독립국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국에 준하는 정치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자연환경 측면에서 그린란드는 지구상에서도 매우 특별한 지역입니다. 남극과 더불어 육지 대부분이 수천 미터 두께의 대륙 빙하로 덮여 있는 거의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체 국토의 약 84%가 얼음으로 뒤덮여 있으며, 나머지 지역도 대부분 암석으로 이루어진 황무지입니다. 사람이 실제로 거주할 수 있는 초원 지대는 해안가 일부에 국한되어 있고, 국토 전체의 약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숲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 역시 최남단의 한 계곡에만 존재한다고 전해집니다.

그린란드의 면적은 약 216만 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의 약 9.7배에 달합니다. 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뉴기니 섬보다도 두 배 이상 넓으며,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약간 큰 규모입니다. 만약 그린란드가 독립국이 된다면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큰 국가가 되며, 동시에 세계 최대의 섬나라가 됩니다. 이러한 기준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그린란드의 면적을 초과하면 대륙, 그 이하이면 섬으로 분류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광활한 면적과는 달리 인구는 약 5만 6천 명 정도로 극히 적습니다. 인구 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약 0.026명으로, 세계에서도 손꼽히게 낮은 수준입니다. 실제로 이보다 인구가 적은 정식 국가는 면적이 극도로 작은 나라들뿐이라고 전해집니다. 인구는 주로 누크를 비롯한 서부와 남부의 몇몇 도시와 정착촌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린란드 전역에 사람이 사는 마을은 100곳도 되지 않습니다. 인구가 2만 명을 넘는 도시는 한 곳도 없을 정도로 거주지는 소규모입니다.

 

기후 역시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해안 지역은 주로 툰드라 기후를 보이며, 내륙은 연중 영하의 기온이 지속되는 빙설 기후가 지배적입니다. 내륙의 기후 조건은 남극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혹독하며, 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영하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그린란드 중심부의 관측 기지에서는 여름 평균 기온이 영하를 기록한 사례도 있으며, 북반구에서 관측된 최저 기온 기록 역시 이 지역에서 나왔습니다.

반면 최남단과 일부 서부 해안 지역은 난류의 영향을 받아 같은 위도의 다른 북극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화한 편입니다. 북극권 이남에 위치한 지역에서는 겨울 평균 기온이 대한민국 중부나 강원 산지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기도 하며, 여름은 매우 서늘해 한국의 늦가을과 비슷한 기온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기후 덕분에 최남단 일부 지역에서는 제한적이나마 목축과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관련해서도 그린란드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재의 대륙 빙하는 과거와 달리 완전히 다시 얼지 못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제시되었습니다. 수십만 년 전에는 그린란드의 빙하가 상당 부분 사라졌던 시기도 있었고, 훨씬 오래전에는 녹색 툰드라 지대였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린란드가 기후 변화의 영향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지역 중 하나임을 시사한다고 전해집니다.

종합해 보면 그린란드는 세계 최대의 섬이자, 극단적인 자연환경과 희박한 인구, 그리고 독특한 정치적 지위를 동시에 지닌 매우 특별한 지역입니다. 얼음과 바람, 그리고 인간의 삶이 공존하는 이곳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지구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상징적인 장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 그린란드 자치청부 역사

그린란드의 역사는 근대 이전부터 매우 오래된 인류 이동과 정착의 기록으로 시작합니다. 학계에서는 가장 먼저 이 땅에 들어온 사람들을 고에스키모라 부르며, 이들은 기원전 약 2500년경 그린란드 남부에 도착해 사카크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인 기원전 2400년경에는 또 다른 고에스키모 집단이 북동부 인디펜던스 피오르 지역에 정착해 인디펜던스-1 문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혹독한 북극 환경 속에서도 사냥과 채집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갔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두 문화는 각각 기원전 1900년과 기원전 800년 무렵을 전후해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후 그린란드 서해안에는 도싯 문화가, 북부 지역에는 인디펜던스-2 문화가 등장했습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혹한을 견디기 위해 땅을 파서 만든 반지하 주거지에서 생활했고, 사향소와 순록, 고래를 사냥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돌과 뼈로 도구를 만들고, 광물을 이용해 램프를 제작해 불을 밝히는 등 환경에 적응한 삶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 문화들 역시 영구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북아시아에서 건너온 툴레인들이 그린란드로 이동해 오면서 기존 문화는 점차 사라졌고, 결국 집터와 일부 유골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과정에 대해 부족 간 충돌, 전염병 확산 등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고대 인족집단들이 오늘날의 이누이트와는 유전적으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별개의 민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유전학적 분석에 따르면 모두 북아시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왔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보유한 모계 유전자가 서로 달랐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린란드에는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스칸디나비아에서 건너온 바이킹들입니다. 당시 그린란드는 지금보다 기후가 온화해 소와 양을 기를 수 있는 풀밭이 존재했고, 에이리크 힌 라우디가 정착한 브라타홀리드 일대는 전원적인 풍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후 조건은 바이킹의 북방 확장과 깊은 관련이 있었으며, 이후 기후가 다시 추워지면서 그들의 몰락과도 연결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목재 자원이 부족했던 그린란드에서 바이킹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서쪽으로 항해에 나섰고, 레이프 에이릭손의 주도로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해 빈란드라 불리는 지역에 정착지를 세웠습니다. 이는 유럽인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약 500년 앞서 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문헌과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비록 현지 원주민들과의 충돌과 제한적인 교역이 있었고, 정착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이 항해는 인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그린란드에 남은 바이킹 공동체는 수 세기 동안 존속했습니다. 한때는 바다코끼리 어금니를 유럽으로 수출하며 번영했고, 가톨릭 주교구가 설치될 만큼 사회 구조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기후 변화가 심화되며 사냥과 목축이 어려워졌고, 유럽과의 교류마저 끊기자 점차 쇠퇴했습니다. 문헌 기록상 1410년까지 바이킹의 존재가 확인되지만, 15세기 무렵에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의 몰락 과정은 환경 변화와 문화적 적응 실패의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이후 그린란드 전역에는 현대 이누이트의 직접적인 조상인 툴레 문화가 확산되었고, 16세기 무렵에는 섬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8세기 초 노르웨이 선교사 한스 에게데가 상륙해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유럽 세력은 다시 그린란드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는 오늘날 누크의 전신이 되는 거점을 세웠고, 이를 계기로 그린란드는 노르웨이를 거쳐 사실상 덴마크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초 덴마크는 국제 조약과 외교 협상을 통해 그린란드 전역에 대한 주권을 점차 인정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덴마크 본토가 점령되면서 미국이 안보 차원에서 그린란드를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린란드는 식민지에서 덴마크 본토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점차 자치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1979년 자치정부 수립을 통해 그린란드는 식민지 시대를 마감했고, 2009년에는 완전 자치로 격상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린란드인은 국제법상 자결권을 가진 민족임이 명시되었고, 덴마크와는 대등한 관계의 동반자로 규정되었습니다. 현재 국방과 외교 등 핵심 사안은 덴마크 왕국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으나, 그린란드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독립을 선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춘 상태입니다.

이처럼 그린란드의 역사는 선사시대 인류의 이동에서 시작해 바이킹의 도전과 몰락, 식민지 경험과 자치로 이어지는 긴 흐름 속에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얼음으로 덮인 거대한 섬은 단순한 변방이 아니라, 인류의 적응과 선택, 그리고 정치적 자결의 의미를 함께 담아온 공간이라고 전해집니다.


❖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그린란드

미국이 그린란드에 관심을 보여 온 역사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져 왔다고 전해집니다. 미국 내에서는 그린란드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는 구상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며, 특히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이러한 구상이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부에서는 트럼프의 영토 확장 구상 가운데 가장 현실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그린란드 문제를 꼽기도 합니다.

 

미국의 첫 번째 공식적인 그린란드 매입 시도는 18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매입했던 국무장관 윌리엄 H. 수어드는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까지 함께 확보하려는 구상을 세웠고, 약 550만 달러에 달하는 구매 계획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 매입안조차 의회의 비준을 얻지 못하면서 이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때의 계획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반세기 뒤인 1917년 미국이 덴마크령 서인도 제도를 2,500만 달러에 매입하면서 부분적으로 현실화되었으며, 이 지역은 오늘날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그린란드가 전략적으로 더욱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1940년 덴마크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미국은 그린란드가 독일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주미 덴마크 대사와 협정을 체결하고 1941년 그린란드를 점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이 비밀리에 설치한 기상 관측소를 제거하기 위해 소규모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공식적으로는 덴마크에 반환되었지만, 미국은 철수를 꺼렸고 1946년에는 1억 달러를 제시하며 다시 한 번 구매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이후 협상을 통해 1951년 미군 기지가 공식화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그린란드 북서부에는 미군 공군기지와 육군기지가 남아 있습니다.

냉전 시기에는 그린란드의 군사적 가치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소련과 미국 본토 사이의 중간 지점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미사일 조기 경보 체계가 배치되었고, 1960년대에는 미군 주둔 병력이 그린란드 전체 인구의 20퍼센트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원자로를 반입해 핵무기 관련 연구를 진행한 사례도 있었으며, 당시 발생한 방사성 폐기물이 아직도 빙하 아래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미국 내에서 그린란드 편입론이 지속되는 이유는 전략적·경제적 이점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국력으로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이 보유할 경우 자원 개발과 북극항로 통제, 러시아 견제 등 다양한 전략적 활용이 가능하다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덴마크 입장에서 그린란드는 단순히 얼어붙은 땅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자존심이 걸린 영토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과거 여러 유럽 열강들이 해외 식민지를 통해 국력을 상징했던 것처럼, 그린란드는 덴마크에게 가장 거대한 해외 영토이자 역사적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덴마크는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그린란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단기적인 손익 계산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고 전해집니다. 장기적으로는 기후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그린란드의 잠재적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본토 주민들 역시 높은 복지 수준과 경제적 여유 속에서 그린란드를 유지하는 데 대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매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강한 편입니다.

한편 그린란드 내부에서는 독립에 대한 열망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2019년 여론조사에서는 성인 주민의 다수가 독립에 찬성 의사를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이는 미국 편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미국에 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합니다. 과거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겪은 경험이 알려져 있는 만큼, 미국 편입이 또 다른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합니다.

 

덴마크 정부 역시 이러한 민심을 무시할 수 없어, 그린란드 주민이 원한다면 독립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편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강하게 선을 긋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방위 협상을 통해서라도 이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린란드 역시 덴마크로부터 독립하더라도 미국에 속하게 되면 또 다른 형태의 종속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경제적 압박과 함께 고액의 인수 제안을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 왔습니다. 이는 과거 제안과 비교해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며, 사실상 강압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국제 사회의 우려를 키웠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군사적 선택지는 매우 위험한 카드로 평가됩니다. 덴마크는 나토 회원국이며, 이를 상대로 한 무력 사용은 나토 체제 자체를 흔드는 행위가 됩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이미 덴마크의 주권을 지지하며 병력 파견과 공동 훈련을 통해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러시아나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 행동에도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됩니다.

 

미국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는 적지 않습니다. 전직 대통령과 부통령, 민주당 인사들뿐 아니라 일부 공화당 인사들까지도 동맹국의 영토를 둘러싼 무리한 확장 시도는 미국의 국제적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의회의 동의, 유권자 여론, 헌법상 대통령 중임 제한 등 여러 제약 요소가 얽혀 있어 장기적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결국 그린란드를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영토 문제를 넘어, 북극 패권과 국제 질서, 동맹의 의미, 그리고 작은 공동체의 자결권이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함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기간에 결론이 나기보다는, 국제 정치의 변화 속에서 오랜 시간 논의될 사안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집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구상은 단순한 영토 확장 발언을 넘어 국제 질서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동맹국의 주권과 자결권을 둘러싼 논쟁은 나토 체제와 국제법의 근간을 다시 묻고 있습니다. 북극 안보와 자원, 항로를 둘러싼 경쟁 속에서 그린란드는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닌 핵심 무대로 부상했습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 그리고 유럽 각국의 대응은 미국의 선택에 대한 중요한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내부의 정치적 제약과 여론 또한 이 구상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무력과 협상 사이에서 어떤 길이 선택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구상이 국제사회에 어떤 결과를 남길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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